수필23 피천득 | '수필' 전부 느껴보기 22 - "나의 사랑하는 생활" 선생이 '사랑하는 생활'은 '좋아하는 것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꿈꾸는 생활'이라고 하겠다. 스스로를 위안하고 내 가족 그리고 친구 그 넘어 주변의 일상 속에서 만지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봐서 교감할 수 있는 모든 이들과, 모든 것들과 그리하는 것을 사랑하고, 점잖게 늙고 서영이와의 걸음을 꿈꾸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생활'이라 했고 그것을 사랑한다고 했다. 선생은 그때에 5만 원의 돈이 생겨 몸을 '청량리 위생 병원'에 뉘셨는지... 그래서 사랑은 시작하셨는지... 책상에 가만히 앉아 '수필'을 덮고 팔을 괴고 생각에 잠기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여름 지중해 언덕 청포도 밭 사이 비탈길을 팔을 한껏 벌린 채 자전거를 내려 달리는 로망을 꿈꿨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나는 어느 겨울 눈이 흩나린다.. 2023. 8. 3. 피천득 '수필' 전부 느껴보기 21 - "멋" 항아리에 물이 넘치기도 하고 항아리의 물을 퍼 내기도 한다. 전자는 선생의 '멋'일 터이고, 후자는 '멋없는 어떤 것'일 터이다. 여백은 결국 여유이니 결국에는 넘치는 것이고 그것이 '멋'이리라.. 선생은 '이러한 것' 즉 멋스러운 것 때문에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난 가끔은 '인생을 살아낼 어떠한 것'에 대한 간절함이 생긴다. 이처럼 난 항아리의 물을 몰래 퍼내기도 하니... 난 '멋없는 사람'일 때가 있는 것이다 2023. 7. 30. 피천득 '수필' 전부 느껴보기 20 - "反射的 光榮" '금아 선생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선생의 '수필'을 말미부터 역으로 읽어올리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오늘 이 글을 다시 읽고 보니 왜 내가 이런 주제로 블로그를 쓰게 되었는지 알 듯 도 하다. 그야말로 선생이 정리하신 '반사적 광영'을 누려보려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반사적 광영'에 선생이 얘기하신 내용들은 2023년을 살아가는 내게 있어 생경스럽거나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들 있다. 예를 들어 서영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손'을 잡았을 대사 부인과 악수한 아빠의 손을 잡는다든지, '족보'와 관련된 말씀이라든지 황은이 망극이라든지... 예전에 이 글을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으나, 오늘 '금아 선생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다시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시공간이 서로 다르니 그 속의 삶이.. 2023. 7. 22. 피천득 '수필' 전부 느껴보기 19 - "皮哥之辯" "皮哥가 다 있어!" 선생은 이런 소리를 듣는 편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하는 편일까 한다. 허나 선생과 나의 시공간의 정규분포 곡선은 중간값을 멀리서 지났기에 그 온도에 차이가 있다. 지금에 나와 그리고 같은 시공간의 내 아이들은 선생님 성씨글 '皮'에 크게 느낌표를 찍지 않는다. 이 글에는 우리가 시공간을 같이 그러나 다르게 나눴음을 다 느끼게 하는 부분에 눈길이 머문다. 다르게 나눴음은 '화신', '신전' 같은 것 이겠고, "아무려나 50년 나와 함께하여, 헐어진 책등같이 된 이름, 금박으로 빛낸 적도 없었다"던 선생의 그즈음 나이에 이른 나로서는 "그런대로 아껴 과희 더럽히지나 않았으면"하는 것은 같이 나누고 싶은 소망이다. 2023. 7. 16. 피천득 '수필' 전부 느껴보기 18 - "이야기" <대화가 필요해요> 선생의 시대와 나의 시대가 어렴풋이 겹쳤던 때는 오래전이었다. 이제 나만 남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이야기’는 어쩌면 선생의 그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일 수 있겠다. 생물학적으로야 입과 귀를 통해서든 손끝과 눈(w/ 스마트폰화면)을 통해 서든 뇌로 전달되어 사람이 인식하고 소통하는 것은 매 한 가지라고 하겠지만... 다르다고 본다. 나는. 사람이 사람과 마주하고 나누는 이야기는 소리 못지 않게 손사래 치는 동작, 입가의 미세한 떨림, 크게 또는 가늘게 떠지는 눈, 이마의 주름살 등 수많은 시각적인 대화가 오가게 된다. 즉, 사람을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감을 느끼게 된다. 선생이 떠난 이제는 오로지 text로서 대화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만 보면 집안에서도 엄마와 아이가 카톡으로 '공부해', '밥 먹어.. 2023. 7. 11. 피천득 '수필' 전부 느껴보기 17 - "잠" "이부자리를 깔지 않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쓰러져 자는 잠이 참 달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걱정이 없었던 어릴 때는 졸리면 잤고, 늘 잘 잤었다. 다 커서는 걱정이 늘며 생각의 골에 빠지어 잠을 잘 못 잤다. 한때 정말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다. 온종일 집중하고 나서 자정이 지나 하숙방에 누워 이불을 덮는다. 기지개 비슷하게 몸을 쭉쭉 늘리며 비틀다 보면 귓속에 '띄..' 하는 짜릿한 느낌이 온몸을 감아 돈다. 마치 뼈 마디마디마다, 근육 한 올 한 올마다 온종일 쌓였던 피로와 나쁜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눈을 떠보면... 다음날 아침이다. 나도 이렇게 '달게' 잔 적이 있었다. 선생의 기억에 남는 보스턴 미술관의 그림이 둘 다 자는 것을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향수병에 잠 못.. 2023. 6. 26. 피천득 '수필' 전부 느껴보기 16 - "낙서(落書)" 나는 어려서 교복일 입을 때 언제나 호크를 단정히 채웠었다. 가급적 깨끗이 입었었다. 늦은 봄 사복을 입을 때는 멋쟁이 친구가 소매를 안감이 보이지 않게 걷어 올린 것을 보고 따라 해 보며 잘 되지 않는 것에 속상해했던 기억도 있다. 커서는 셔츠를 단정히 했고,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도 정장 상의를 잘 벗지 않았다. 언젠가는 "OO님은 넥타이 맨 모습이 멋있어요"라는 말도 들었었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때 운동복도 머리도 단정히 하는 편이었다. "저고리 소매가 길어서 좀 거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또 내 옷을 바라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 여자들은 여자들끼리만 서로 옷을 바라다보는 모양이었다.... 중략... 다행히 우리나라 여성도 내 옷을 보는 이는 하나도 없다" 어느 .. 2023. 6. 13. 피천득 '수필' 전부 느껴보기 15 - "술" 이 날, 선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한 잔의 술을 안타까워했을까?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 술빛을 보느라고 샀던 거라고 하였다'이 얼마나 순발력이 뛰어난가? 참 아름다운 말솜씨다. 난 술을 즐겨 마시고 어느 정도 잘 먹기도 한다(물론 나이를 속일 수 없으니.. 줄기는 했다). 단, 당구도 화투도 골프로 하지 않는다. 선생이 들은 '피 선생이 한 잔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는 내게는 'OOO는 골프나 당구를 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로 들린다. 그래도 골프나 당구를 못 치되 술을 마실 줄 하는 것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골프야 안 가면 그만이나 술자리에서 멀뚱멀뚱은 괴롭다..(코로나 격리 해제 후 조심할 때 당해보니 그랬다) 취한 이들이 서로 눈빛만으로 횡설수설 만으로도 한 마음이 되는.. 2023. 6. 9. 피천득 '수필' 전부 느껴보기 14 - "보스턴 심포니" 이 작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의 모습이다. 아주 깨끗하고 빳빳한 종이 한 장을 잘 쓸어 넘기는 느낌이 들고, 깔끔한 와인이나 정종 한잔이 목을 타고 한 방울 남김없이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을 즐기다 보면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보스턴의 어느 홀에 선생의 모습을 한 내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다. 선생이 마주쳤던 그 사람을 나도 한 번 볼까... 하여 두리번거리게 된다. 누굴까? 한 번을 못 봤으나 당연히 알아볼 수 있다. 보지 못하는 그 사람을 여러차례 보았고 만나지 못했으나 만남의 파문은 나의 호수에도 일었다. 들리지 않는 방송은 들리지 않았었고 그 사람과 선생과 그리고 나는 칠천 마일의 거리와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 다시 제 시공간으로 각자 돌아갔다. 2023. 6. 7.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