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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 아는 글, 박준 시인의 '마음 한철'의 후반부다.
내 마음속 깊은 곳 희미하게 존재만을 감지하는 뭔가에 물감을 묻혀 종이에 찍어낸 것 같았다.
대뜸 이 책을 사서 언제나처럼 검지로 한 장 한 장 얌전히 쓸어 넘기며 읽었고 글 사이사이 묻어나는 예스런향에 취했다.
기억도 희미한 어쩌면 어른들의 넋두리가 내 기억에 이식되었을지 모르는 추억들이 하나씩 손가락 사이를 흘러내렸다.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중략...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시인의 '꾀병'이다. 제목대로 시인이 꾀를 내어 병을 부린 것 인지는 모르겠으나 참 많이 아팠으리라...
내 조카 같은 外로 내 (장가가지 않은) 삼촌 같은 內를 갖었으니 얼마나 삶고 살았을까 꾀병조차라도 부렸지 싶었다.
시인의 개인사를 알고는 이 말을 다시 되뇌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사람이 어린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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